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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악마 빙의
작성자 소장괴담 작성일 2020-04-12 00:56 조회수 1,685

2015년도 괴담



어릴 적 우리 집은 요코하마에 있었다.


아버지는 교회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치고는 상당히 호탕한 성격이라, 신도들에게 인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닥 믿음이 깊지는 않았기에 기도라고 해봐야 밥 먹기 전에 가족이 다같이 하는 것 외에는 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요코하마에서, 우리 집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가 골동품점에서 패션 잡지 정도 크기의 고서를 사왔다.




우리 누나는 오컬트 매니아로, 그런 물건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물론 누나가 이상한 것을 사올 때마다, 아버지는 [성직자의 딸이 이런 걸 사모으는 게 말이나 되냐?] 라면서 핀잔을 주셨다.


개중에는 꽤 위험한 것도 몇 개 있었는지, 아버지가 [이건 당장 돌려주거나 태워버려라.] 라고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누나가 이번에 사온 건 아마 서양 쪽 오컬트 원서인 듯 했다.


누나는 영어를 무척 잘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영어로 된 원서를 구해다가 읽곤 했었다.


그리고 책을 사온 바로 그날, 나는 누나에게 억지로 끌려와서 같이 책에 적힌 '악마를 부르는 주술' 에 참여했다.




책에 나온대로 의식을 거행하고,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흥미를 잃은 우리는 그냥 TV나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하시는 것이었다.


[뭐냐, 이 동물 냄새는? 집에 개라도 데리고 들어왔니?]


그리고 냄새를 따라 누나 방에 들어가더니, 그 책을 찾아내셨다.




[얘들아, 이리 와봐라!]


아버지는 매우 화난 목소리로 고함을 치셨고, 나와 누나는 놀라서 황급히 누나 방으로 뛰어갔다.


[첫째 너, 이게 뭔지 알고 가져온거냐?]




[아뇨... 그냥 단순히 귀신이랑 만나는 법이 적인 책이라고 해서...]


[이 바보야! 이 책의 표지는 진짜 사람 피부인데다, 써 있는 건 모두 사악한 흑마술이야! 무슨 소린지 알겠니? 단순한 흑마술이라면 그냥 읽는 정도로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 하지만 이건 적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이 진심으로 저주를 담아 만든 책이야. 사람의 피부를 벗겨서 책을 만들다니... 제정신인 놈들이 만든 게 아니다. 당장 처분해야겠어!]


그리고 아버지는 책을 들고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가셨다.




1시간 정도 지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직 짐승의 냄새가 남아 있는데... 설마, 너희들 책에 써 있는 흑마술을 따라한 건 아니지?]


누나가 마지못해 모든 것을 털어놓자,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해 누나의 뺨을 때렸다.




언제나 자상하던 아버지가 누군가를 때리는 건 태어나서 그 때 처음 봤다.


[오컬트 같은 걸 취미로 삼는 건 상관 없다. 재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 자신을 희생물로 삼아서 뭘 어쩌겠다는거냐!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해도 될 것과 안 될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울고 있는 누나에게 [내일 둘이 같이 교회로 오거라.] 라고 말했고, 그 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내가 멍하니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 집 안을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나 누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갑자기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3번.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를 넘은 한밤 중이었다.


아무리 목사님 댁이라고는 해도, 이런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흔치 않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나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부엌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3번 들려왔다.


점점 겁에 질릴 무렵, 아버지가 2층에서 내려오셨다.


[악마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지... 걱정 말거라. 아직 진입단계니까. 제압단계로 바뀌기 전까지는...]




[꺄아아아악!]


바로 그 순간,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듯 2층 누나 방에서 절규가 울려퍼졌다.


나와 아버지는 서둘러 누나 방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었다.


누나가 있었다.


눈 앞의 광경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누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누나 같지 않은 것이 침대 위에 있었다.


누나는 침대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몇 초 지나 겨우 깨달은 것은, 누나의 눈이 전부 검은자위만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누나는 혀를 쭉 내밀고 있었다.


혀가 너무 길었다.


그런 모습을 한 채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고 있었다.




[진입단계를 이렇게 빨리 끝낼 줄이야... 이미 제압단계에 들어가 버렸구나! 막내야! 누나를 어서 교회에 데려가야겠다. 도와다오!]


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누나가 다치지 않게 손발을 묶고, 누나를 들쳐업어 차로 옮겼다.


차 안에서도 누나는 정신이 나가버린듯 날뛰어, 그저 몸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악마가 씌인거야?] 라고 묻자, 아버지는 [그래.]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누나는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거야?]


[정확히 말해줄 수는 없지만 히브리어다.]




교회로 향하는 도중, 우리 차는 검은 고양이를 3번 쳤다.


신호등도 파란불로 바뀐 직후에 갑자기 다시 빨간불로 바뀌곤 했다.


엔진도 3번이나 고장나 다시 시동을 걸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냉정을 잃지 않고 운전해, 겨우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구 날뛰는 누나를 교회 의자에 묶어두고, 아버지는 안쪽 방에서 다양한 도구를 가져왔다.


[설마 영화 같은 데 나오던 엑소시즘을 하려는거야? 아빠 해본 적 있어?]




[딱 한번.]


[성공했어?]


[그 때는 나 혼자 한 게 아니라서 어떻게든 해냈었지...]




[나는 뭘 도와주면 되요?]


[악마가 얽혀있는 일이니 잘 모르는 사람이 나서면 안 된다. 누나 뒤에 서 있거라. 만약 밧줄을 뜯으려하면 말려.]


그리고 아버지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라며 기도문을 읽고, 누나에게 성수를 뿌렸다.




성수가 얼굴에 맞을 때마다 누나는 끔찍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됐어!] 라거나, [그 놈이 십자가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왕이 됐을텐데!] 라고 외쳤던 것 같다.


라틴어였기에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전자는 예수를 임신한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고, 후자는 예수 본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누나가 내게 고개를 돌리더니 [아빠, 도와줘!] 라고 외쳤다.


나는 누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엑소시즘 도중에 악마에게 말을 건네지 말아라! 누나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어. 무시하거라!]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악마의 이름을 물었다.


아무래도 악마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힘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 같다.


어느새 아버지도 나도 땀에 흠뻑 ㅈ어 있었다.




누나의 입에서는 무엇인가가 썩는 것 같은 냄새가 풍겨온다.


[네놈의 이름을 말해라!]


그 순간 누나의 입에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발음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놈의 이름을 말해라!]


[캬아아아악!]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성해포라는 성물을 손에 들고 누나의 이마를 꽉 눌렀다.




아버지조차 진짜 성물인지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효과가 있었으니 아마 진짜였겠지.


누나는 검은자위 눈동자를 치켜뜨고, 의자에 묶인 밧줄을 정신없이 뜯으며 소리쳤다.


[너 희 들 은 8 월 에 죽 는 다!]




그것과 동시에 교회의 모든 창문이 [쾅쾅쾅쾅쾅쾅쾅쾅쾅!] 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창문 하나하나마다 까마귀가 달라붙어 부리로 창을 쪼고 있었다.


이 한밤 중에 까마귀들이 한 번에 움직이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공포를 견디지 못한 나는 아마 그대로 기절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 응급실이었다.


누나는 의식이 끝나자 탈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바로 병원에 데려왔던 것 같았다.




나는 가벼운 빈혈이라는 진단만 받았을 뿐이었다.


[누나에게 씌어 있던 악마는 이제 사라진거야?]


[음, 일단 지금은.]




[그럼 또 찾아오는거야?]


[올지도 모르고 안 올지도 모른단다. 악마에게 시간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니까.]


[8월에 죽는다고 했는데 아빠는 안 무서워?]




[생각했던 것보다 금방 끝난 걸 보면 그렇게 강한 악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 시시한 녀석이 도망치면서 억울해서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결국 악마라는 건 도대체 뭐야?]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지만, 저런 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단다. 하나 너에게 당부해둘 게 있다. 이번에는 아직 빙의 도중이었던데다 누나의 인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낼 수 있었어. 물론 네가 나중에 성직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완전히 빙의된 사람을 본다면 그 때는...]




[그 때는?]


[도망치거라!]


그 후 누나에게도 나에게도 변한 것은 없었다.




8월에 가족 중 누가 죽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평범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3년 전.


속도위반으로 인해 누나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태어난 조카의 몸에 666이라고 적힌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얼마 전 누나는 3살이 된 조카가 이상한 말을 했다고 전했다.


[엄마, 바다는 가지 말자.]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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